이번 캘거리에 와서 새로운 경험을 했습니다. 제 직계 가족이 돌아가신 게 지난 해 5월 밴쿠버에서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것이 처음입니다. 그때는 코비드 때문에 임종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돌아가시기 3일 전에 화상으로 인사를 나누었지만 임종을 지키지 못한 것이 아직도 많이 아쉽습니다.
이번에 큰 처남과는 임종 전에 시간을 길게 같이 보낼 수 있었습니다. 지난 2월 말에 이곳에 온 가장 중요한 이유가 처남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두번째 이유는 처남이 기력이 남아 있을 때 의미 있는 시간을 갖고자 함이었습니다. 감사하게도 두가지 목적을 다 이루었습니다.
지난 월요일에 다시 캘거리에 오니까 처남이 많이 약해져 있었습니다. 거의 의식이 없었고 큰 소리로 이름을 부르면 눈을 뜨고 쳐다보는 정도였습니다. 듣기는 듣지만, 말은 못하고 눈도 초점을 잘 맞추지 못하였습니다. 월요일 저녁에 제가 가서 손을 잡고 기도를 해드렸습니다.
한국에 사는 딸 가족이 월요일 저녁에 도착해서 찾아 뵈었는데, 눈을 뜨지 못했다고 합니다. 딸 가족이 올 때까지 힘을 다해서 버텼지만 의식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 3시 10분에 소천하셨습니다. 제가 병원에 가보니 고개가 옆으로 떨어져 계셨습니다. 이 영혼을 받아 달라고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지난 2월 말에 처남을 보았을 때 이미 많이 병세가 심해져 있었습니다. 식사를 거의 못해서 정말 아프리카 난민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여러가지 장기가 기능을 못해서 굉장히 괴로워하셨습니다. 저도 그런 모습을 보는 것이 어려웠는데 직계 가족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가족을 떠나 보낸다는 것, 그것도 아픈 가족을 떠나 보낸다는 것이 참 어렵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래도 우리 믿는 사람들은 천국에 대한 소망이 있기 때문에 너무 감사합니다. 죽으면 이 땅에서 겪는 고통과 아픔을 끝내고 오직 기쁨과 평안만 있는 천국에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이 땅에서 사랑하는 가족이 병으로 힘들어 하는 것을 보는 것, 그리고 이 땅에서 이별하는 것을 보는 것이 어렵기는 합니다. 되도록 아프지 말고, 그런 모습을 가족에게 보이지 말고 죽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어떻게 죽느냐 하는 것이 우리 마음대로 되지 않지만, 평소에 건강을 잘 살피고, 아프면 빨리 병원에 가고 해서 가족이 힘들어 하지 않게 죽는 것이 우리가 가족에게 해야 할 최소한의 예의인 것 같습니다. 저도 죽게 되면 아내와 아이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죽게 될지 생각해 보는 기회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제 개인적인 일로 교회를 오래 비워서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