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한국에서 ‘내로남불’이란 단어가 유행입니다. ‘내로남불’은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을 줄인 것입니다. 남에 대해서는 비판하고 나에 대해서는 합리화하는 사람에게 씁니다. 예를 들어, 야당일 때는 정부가 주도하는 토건사업을 반대하다가 여당이 되어서는 옹호하는 것입니다.
‘내로남불’이 부정적으로 쓰이지만 저는 ‘내로남불’에서 교훈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먼저, ‘내로남불’을 달리 생각하면 같은 현상에 대해 전혀 다른 시각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처한 현실에 따라서 같은 사람이 다른 주장을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것을 주장할 때 주의해야 합니다. 다른 시각도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또 나도 상대방의 처지가 되면 다른 주장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역지사지). 그래서 자기 주장, 특히 극단적인 주장을 하는 것을 주의해야 합니다. 댜행히 우리에게는 절대적인 진리인 성경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적용할 때 너무 극단적인 주장을 하지 말고, 상대방의 처지를 잘 이해해서 상대방을 존중하면서 적용할 지혜가 필요합니다.
두번째 교훈은, 어떤 정책에도 적어도 두가지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원자력발전소에 대한 정책을 정할 때, 경제적인 면을 보면 유지해야 하고, 환경적인 면을 보면 폐기해야 합니다. 경제와 환경 모두 우리의 삶에 중요하기 때문에 어떤 것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한가지만을 고집하기 보다는 다른 면도 고려해야 합니다.
물론 어떤 때에는 특정한 결정이 설득력이 있습니다. 제가 캐나다에 왔을 때인 1994년에 캐나다는 국가 빚이 너무 많아서 연방 예산의 1/3 가량이 이자로 나갈 정도였습니다(당연히 원금은 못갚고). 예산의 나머지 2/3로 국가를 운영하다 보니까 또 빚을 지게 되어 국가 빚은 자꾸 늘어 갔습니다. 그래서 정부에서 과감하게 정부 지출을 줄이는 정책을 써서 몇 년 후에는 정부 수입이 지출보다 많게 되었고, 그 돈으로 빚을 줄여나가서 캐나다 재정상태가 좋게 되었습니다. 물론 국민들이 고통을 많이 겪었습니다.
매운 것을 좋아하는 한국사람들은 화끈한 것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극단적인 의견을 화끈하게 주장해야 속이 풀리고 남을 비판해야 기분이 좋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무엇을 결정하거나 의견을 말할 때 너무 한편에 치우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다른 의견이나 정책도 나름 일리가 있습니다. 서로 자기 주장만 해서는 싸움만 납니다. 어떤 것을 주장하거나 결정할 때, 다른 의견이나 정책이 있음을 인정하고 상대방의 처지를 이해하고 존중하여 타협점을 찾는 것이 지혜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