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아버님 장례를 드릴 때에 아버님 영정 사진이 눈에 띄었습니다. 양복이 아닌 편한 복장에 활짝 웃고 계신 사진이었는데, 보고 있는 저도 기분이 좋을 정도로 훌륭한 사진이었습니다. 근래 아버님을 찾아 뵐 때마다, 혹은 영상으로 통화할 때마다 웃으시면서 저를 맞아 주셨는데, 그때보다 인상이 더 좋으셨습니다. 아마 형이 미리 준비한 것 같습니다.
어머님 돌아가실 때에도 영정 사진이 좋았습니다. 어머님은 준비성이 철저하셔서 아마 본인께서 사진을 준비하셨을 것 같습니다. 귀부인처럼 꾸미시고 잔잔히 웃고 계신 모습이었습니다. 장모님 장례식은 코비드 때문에 가지 못했는데, 제가 이미 본 잔잔히 웃고 계신 사진을 쓰셨습니다.
작년에 돌아가신 큰 처남도 영정 사진이 좋았습니다. 머리카락이 적어서 중절모를 쓴 모습에 사람 좋은 웃음을 띈 모습이었습니다. 사진을 보고 있으면 살아 계신 모습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돌아가신 분들의 영정 사진은 평소 찍었던 사진을 확대해서 쓰기에, 보면서 좀 안타깝습니다. 갑자기 돌아가신 것도 슬픈데, 영정 사진까지 그러니까 더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아니면 증명사진 같은 것을 확대해서 쓰기도 하는데, 그분의 얼굴은 맞지만, 이미지가 안 맞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저도 이제 영정 사진을 준비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확률적으로 보면 아직도 살 세월이 남아 있지만, 언제 하늘나라에 갈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매년 일정한 날 (연초나 생일날)에 사진을 찍어 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미국에 살 때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자녀를 축하하는 잔치에 가곤 했습니다. 거기에 가면 그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찍은 사진을 같이 모아 놓은 것을 있는데, 그 아이의 성장 과정을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남는 건 사진뿐’이라는 말처럼 오랫동안 매년 사진을 찍어 두면 나이를 먹어가는 모습의 변화도 볼 수 있고, 또 남은 가족들에게 많은 추억도 남길 수 있을 것입니다. (매년이 아니라도 2-3 년에 한 번, 혹은 5 년에 한 번?)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떤 표정으로 사진을 찍어야 하나 고민이 살짝 됩니다. 과연 저의 ‘시그니처 표정’은 무엇일까? 사람들이 저의 영정 사진을 보면서 살아 있는 모습을 느낄 표정은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p.s. 언제 사진에 조예가 깊은 분을 초청해서 주일에 가족 사진이나 개인 사진 (영정 사진을 쓸 수 있는)을 찍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