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어머니께서 갑자기 돌아가신 이유는 10 년 전에 앓으신 임파선 암이 재발했기 때문입니다. 작은 창자에 암덩어리가 생겼는데 배에 피가 고이고 폐에 물이 차고 심장이 약해졌습니다. 돌아가시기 전에는 숨을 쉬기 힘드셨는지, 무의식 속에서도 “병우야 답답해”라고 옆에 있던 형의 이름을 여러 번 부르셨다고 합니다. 마지막에는 “엄마 답답해”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돌아가실 때가 다 되니까, 90이 다 되신 어머니께서 55 년 전에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생각났던 모양입니다. 그만큼 엄마의 영향은 큰 것 같습니다.
저는 1984년 25 살 때 유학을 온 후로 어머니와 떨어져 살았습니다. 빅토리아에 살 때 오랜만 에 어머니 집에 가서 밥을 먹었는데, 어머니의 독특한 음식 맛을 느꼈습니다. 어머니께서 해 주신 음식은 설명하기 힘든 독특한 맛이 있습니다. 어머니의 체취에서도 독특한 냄새가 납니다. 이런 흔적은 기억을 하려고 하지 않아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목사로서 제가 성도님 들에게 어떤 기억을 남기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평신도로 있을 때 청년들을 집으로 초청해서 음식을 자주 먹었습니다. 아내가 주로 음식을 했지만, 저도 가끔 음식을 했습니다. 그때 만들었던 김치찌개 맛을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빅토리아에서 가정교회를 시작하고 나서는, 목장 방문을 할 때 음식을 제가 한가지 씩 만들어 가지고 갔습니다. 많은 분들이 좋아했는데, 그때 먹은 음식을 기억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음식에 대한 기억보다 다른 것으로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의 약점을 자랑했습니다. 육신의 약함으로 인해 자신이 예수님을 의지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능력이 완전하게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또 예수님을 위해 드린 자신의 희생을 기뻐했습니다. 희생으로 인해 약해졌을 때 그가 오히려 강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희생으로 인해 생긴 상처를 자랑했습니다. “이제부터는 아무도 나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나는 내 몸에 예수의 상처 자국을 지고 다닙니다.” (갈라디아서 6:17)
우리 교회 초창기 때 저의 모습과 지금 저의 모습을 모두 본 분들이 계십니다. 어떤 분은 지금 저의 모습을 보면서 측은하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옛날에 교수 평신도로서 자신 있게 섬기던 모습과 여러가지로 깍 인 지금 모습이 비교되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 모습이 더 좋습니다. 지금 저의 모습으로 예수님을 더 잘 섬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 저의 모습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더 역사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의 이런 모습과 흔적들이 여러분의 기억에 남는다면 저는 성공한 목사요 행복한 목사라는 생각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