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소위 ‘가짜뉴스’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투브를 보면서 의심이 들 때가 많습니다. 특히 그분들이 얘기하는 ‘의견’이나 ‘해석’이 맞는 것인지 확신이 안 섭니다. 그분들의 말을 맹목적으로 믿게 되면 잘못된 생각을 갖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우리도 잘못된 의견이나 해석을 가지고 대화를 하다 보면 서로 신뢰가 생기지 않고, 따라서 건강한 관계를 이룰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언어생활이 필요합니다.
먼저 어떤 ‘사실’을 얘기할 때에는 근거를 잘 챙겨야 합니다.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이나 객관적으로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근거가 확실한지 명확히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얻은 지식은 사실이 아닐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인터넷에서 보았는데’ 라고 하면서 사실의 출처를 밝히는 것이 지혜롭습니다.
‘의견’이나 ‘해석’을 얘기할 때에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의견’이나 ‘해석’은 주관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재판에서 원고와 피고는 완전히 반대의 주장을 합니다. 한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저는 자기 관점에서 사건을 해석하다 보면 그렇게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새는 특히 진영에 따라서 완전히 반대되는 의견이나 해석을 하는 것을 자주 봅니다. 정치인들이 여당일 때 내는 의견이 야당일 때 내는 의견과 확연히 다릅니다. 이는 지금 여당이나 야당이나 같습니다. 자기 진영에 유리한 대로 의견을 내다 보니까 지금 의견이 과거의 의견과 다른 것입니다.
또 제 3자로서 보는 시각과 당사자가 보는 시각이 다릅니다. 제가 미국에서 신학교를 다닐 때 제 모교회의 어느 전도사님과 같이 5 시간동안 통학을 했는데 차 안에서 모교회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담임목사님이 그렇게 하시면 안 되는데 그렇게 하신다, 이런 것은 이렇게 해야 하는데 안 하신다”등 정말 많은 얘기를 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제가 담임목회를 해 보니까 제가 말한대로 목회 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깨 달았습니다. 제 3자가 밖에서 보는 것과 당사자가 직접 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목사로서 목회하는 것에 대해서 답답하든지 불만족스러울 수 있습니다. 목자님들이 목장을 인도하는 것에 대하여 답답하든지 불만족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밖에서 보는 시각과 담당자가 겪는 상황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당사자가 모르거나 놓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제 3자가 의견을 내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러나 충분히 의견을 제시했는데도 담당자가 바꾸지 않는다면, 당사자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이 지혜로운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