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키울 때 아이들이 싸우면 한 아이가 와서 이릅니다. 누가 잘못했는지 가려 주기 위해 말을 들으면 다른 아이가 잘못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른 아이를 불러서 물어보면 또 그 아이의 말이 맞습니다. 이렇게 곤혹스런 경우가 많았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우리에게 ‘회색지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회색지대’란 이도 저도 아닌 상태, 즉 애매한 범위를 말합니다.
A나 B의 영역에서 다툼이 일어나면 판단하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AB의 영역에서 다툼이 일어나면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두 사람의 다툼은 AB영역에서 일어납니다. 이때 ‘김’편으로 판결이 나면 ‘안’이 억울해 하고, ‘안’편으로 판결이 나면 ‘김’이 억울해 합니다. 요새 2심에서 유죄판결이 내려진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이런 경우입니다.
비단 판단의 영역에서뿐 아니라 권리를 주장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김’는 A뿐만 아니라 AB도 자기 권리라고 주장합니다. ‘안’은 B뿐 아니라 AB도 자기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서로 다툼이 생깁니다. 예를 들어, 노조는 어떻게 해서든지 AB를 다 가지려고 하고(당연히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회사는 어떻게 해서든지 AB를 내주지 않으려고 버팁니다(이것도 당연히 회사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재판에서 AB를 노조에게 주면 당연히 회사가 반발하고, 반대로 노조에게 주지 않으면 노조는 파업을 합니다. AB를 반씩 가지라고 해도 양측에서 불만이 있게 됩니다. 노조와 회사 양측 모두AB가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결론은, 법으로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법은 이것 아니면 저것입니다. ‘김’쪽으로 판결이 나면 ‘안’이 억울하고, ‘안’쪽으로 판결이 나면 ‘김’이 억울합니다. 노조와 회사도 자기 것(자기 것도 아니고 공동의 것인데)을 더 챙기려고 끊임없이 싸웁니다.
먼저 이런 회색지대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다툼이 회색지대에서 일어난다면 양쪽의 영역임을 인정할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서로 만족스럽게 타협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양보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할 수 있는대로 사람들과 화평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양보해야 하는 것은 우리 크리스찬의 몫입니다.